우리 나라에서 만화 그리면 배고픈 이유

우리 집은 요즘 세상에 돈 되는 능력 보다는 돈 안 되는 능력이 다분히 많은 집안이다. 이런 말 공감 갈 거다.
아버지께 물려 받은 능력은 주로 정확한 손재주, 풍류, 그림 이런 류이다. 한마디로 에술적 재능과 공간감각 같은 거다. 주로 그게 미술과 길 찾아가기, 수학에서 발현되긴하지만..
이글 쓰고 있는 본인도 믿거나 말거나 아직도 어떤 음악이든 들으면 동시에 계명으로 3음 이상 들린다. 당연 그걸 듣기만해도 건반악기 등으로 곧장 쳐 낸다. 그러나.. 악보는 거의 못 본다... 그냥 들리는 거니까. 문제는 이게 그다지 돈이 되질 않는다는 거다^^;
동생의 경우는 스토리도 잘 짓고 만화도 곧잘 그려왓다. 어느 때인가, 맨날 일본 만화만 닮는다고 했더니 나름대로 노력하여 순수 창작 캐릭터, 그러니까 동생의 만화에서만 볼수 있는 인물과 화풍도 만들어 냈었다. 그걸로 아마추어 만화에 등단도 한 것 같다. 뭔가 증 같은 게 온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역시 그게 전부다... 지금은 자기의 그림을 큰 화판에 몇 장 그려 벽에 걸어두고 사는 주부다... 사실 내가 만화가가 되는 걸 막았다. 명희야, 정말 미안하다...
아래 기사는 우리 나라에선 그래도 내노라 하는 뜨르르한 만화작가이시다. 영화도 몇편 만들어질 정도의 유명작가인데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어떤 사람이 보기엔 배부른 소리같겟지만, 내가 보기엔 같은 정도의 유명세를 타는 다른 직업에 비해서도 현저히 잘 사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안승룡 만화가님 어케 살고 계신지..-
작가가 말하는 우리 나라에서 만화 그리면 배고픈 이유를 나는 이렇게 본다. 예전부터 정의해 봤던 것이다.
1. 인구가 작아 만화로 얻어지는 수입으로 다음 만화를 이어가기 힘들다.
이게 제일 큰 문제로, 창작, 출판, 비용회수를 위해선 적어도 인구8000이상의 시장이 필요하다.
2. 과거엔 폭압적 인식과 만화=불량의 인식이 망쳤다.
3. 신인들은 기성만화가의 아성과 테두리를 벗어나 홀로 서기 힘들다.
또한 문하생 제도 같은 것이 있는데 개성을 말살하고 시장독과점 체제를 유지하는 거다.
4. 근래엔 인터넷이 가장 큰 경쟁자다. 적이라기 보다는 수요를 분산해 가는 경쟁자인 샘이다.
5. 문화의 발달, 경향의 변천 - 2차원적 고정된 지면 보다는 3차원이나 동영상에 매료한다. 이 현상은 비단 만화 뿐 아니라 신문, 소설, 라디오방송 에서도 나타난다.

위 모두 중요한 사항이지만 내가 본 바로는 인구가 제일 큰 원인이다. 일본은 만화 한 편만 잘 그려도 크게 성공한다. 이유는 1억 2천 인구 중 단 몇 퍼센트만 사 보아도 작화,제작에 들어가는 고정비가 빠진다. 그래서 중고교에 특활이나 서클로도 우굴우굴한 것이다.
사실 인구 1억이면 되는 일이 많아진다. 이미 생활수준이 2만달러대 국가를 넘고 기술수준은 그 이상인데, 인구 4천 가지고 누구에게 물건 팔아 돈 벌어서 이것도 누리고 저것도 돕고 침채되간다는 각종 문화 스포츠에도 참여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사장규모의 시너지를 톡톡히 누리는 나라가 중국이다. 불과 4년 전만해도 우리나라보다 국민총샌산이 뒤졌었다. 지금은 세계 2위이다.
우리에게 이런 시장규모의 시너지를 철저히 막고 위협하고 훼방하는 나라가 주변 강대국이다. 바로 통일을 방해하고 있는 거다. 이들은 이걸 무척 두려워 한다. 희안하게도 우리 나라의 전통적 기득권 세력도 이것을 싫어 한다.
길이 이상한데로 흘렀다.
아래 기사 원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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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강철수 “만화 그리지 마세요, 불행해지니까…”
[경향신문 2007-04-17 19:17:32]
“한국에서는 절대로 만화 그리지 마라! 불행해지니까….”
한때 그 이름만으로도 ‘만화’를 떠올리게 했던 만화가 강철수씨(63). 그의 입에선 의외로 ‘만화=불행’론이 터져나왔다.
만화가 강철수씨가 검열이 엄격했던 80년대 상황을 떠올리며 웃고 있다. 강윤중기자
2006년 한국 영화 흥행작 ‘타짜’를 비롯해 7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 화제 속에 종영된 MBC 드라마 ‘궁’ ‘하얀 거탑’ 등 근래 TV드라마나 스크린을 점령한 대부분의 작품들이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만화가 입장에서 본다면 ‘만화=행복’이 아닐까 싶은데, 강씨의 대답은 의외였다.
“이 땅의 만화 환경은 콘크리트 위에다 흙을 살짝 뿌려놓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씨앗을 뿌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출신인 강씨는 생존 만화가 중에서 가장 오래, 가장 많은 만화를 그린 작가로 꼽힌다.
중학교 재학 중이던 1962년 어린이 만화 ‘명탐정’을 발표하며 일찌감치 프로 만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올해로 47년째. 그동안 2000편이 넘는 만화를 그렸다. 1980년대 ‘사랑의 낙서’ ‘발바리의 추억’ 등의 신문연재 만화를 통해 성인만화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만화계 원로 강씨가 우리나라 만화에 거는 기대는 절망에 가까웠다. 과거에는 표현의 자유가 없어 절망했고, 지금은 그리고 싶은 갈망은 있지만 그릴 ‘밭’이 없다며 한탄했다. 아니나 다를까 먹물 냄새로 가득해야 할 그의 작업실은 마른 화초들로 가득했다.
10여년전 만화산업 진흥 차원에서 전국에 100개가 넘는 만화학과가 생겼지만 졸업생들은 갈 곳이 없고, 그나마 전공을 살려 일을 해도 수입이 동남아 이주노동자 월급도 안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경쟁력 있는 만화가 나오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씨는 요즘 충북 제천교육청 의뢰로 학습만화 ‘수학논술’과 1986년 만화잡지 ‘보물섬’에 연재됐던 ‘내일뉴스’의 영화화 작업을 진행중이다.
현 만화시장과 만화가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던 강씨는 왕성하게 활동했던 자신이 젊은 시절 겪었던 정부의 탄압과 사전검열로 이야기를 옮겨갔다.
“47년 동안 만화를 그리면서 47번도 넘게 잡혀갔습니다. 엄마 아빠가 나란히 누워있는 그림을 그리면 음란하다고 잡아가고, 뱀을 그리면 징그럽다고 잡아갔어요. 애정만화가 안된다고 해서 바둑만화를 시작했더니 이번에는 또 ‘내기(도박)’를 조장한다며 붙들어 갔어요.”
당시의 창작 환경에 환멸을 느꼈지만 만화가 밥줄이다 보니 붓을 꺾지 못했다. 사전검열 때문에 그림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느라 신문사 근처 여관에서 밤을 새기가 일쑤였다. 강씨는 80년대 폭압적인 창작 환경이 우리나라 만화를 20년 이상 후퇴시켰다며 성토했다.
“우리나라 만화 역사가 짧기도 하지만, 작가주의나 다양성을 기할 수 없는 이유는 시대가 만화 문화를 말살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문화콘텐츠는 부’의 시대에 만화나 만화가에 대한 대우는 예전과 다름이 없다고 말했다. 80년 초 여관잠을 자가며 숨어서 만화를 그리던 시절, 여관비가 더 나간다며 아내가 얻어준 정동의 작업실. 빛바랜 작업실만큼이나 나이 든 만화가의 현실은 쓸쓸했다.
〈김후남기자 khn@kyunghyang.com〉-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미디어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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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狂虎 | 2007/04/18 10:22 | 기본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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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안승룡작가님찾아요 at 2017/06/11 12:08
혹시 안승룡작가님 소식들을수있나요?
과거에 도움받았던 사람입니다. 너무그립습니다.
제연락처는010 8886 8116 이구요. 도움주시면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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